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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에 관한 고찰

by 예술 해석가 2024. 3. 2.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과 아우라의 미학

1936년에 쓰인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은 당시의 사진과 영상 기술의 등장으로 예술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탐구하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벤야민은 이 작품에서 아우라의 미학에 대한 고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우라는 그리스어로 "숨"이나 "공기"를 의미하며, 종교적으로는 영적인 기운이라 해석됩니다. 벤야민은 이를 통해 특정 대상이 지닌 독특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그 대상의 독자적이며 일회적인 특성, 그리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경험을 말합니다.

벤야민은 예술 작품 또한 아우라를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나 마크 로스코의 추상 표현 작품들은 그 작품 앞에서 감상자가 일종의 초현실적인 미적 경험을 하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감상자들은 이러한 작품들 앞에서 감동을 받아 울기까지 하는데, 이것이 마치 종교적 경험과 유사하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아우라는 벤야민에게 예술 작품의 제의적 가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의란 제사나 공동체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의식을 의미하는데, 전통적인 예술 작품은 이러한 의식에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벤야민의 이러한 미학적 관점은 당시 예술의 혁명적인 변화를 예측하며, 사진과 영상이 예술의 정의를 어떻게 재정의하게 될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의 예술과 아우라

발터 벤야민은 예술 작품이 주술적 의식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종교적 의식으로 전환되며 진정한 예술 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형성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고대 동굴벽화부터 중세 성모화, 그리고 현대 예술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아우라의 발산과 예술의 의의를 탐구합니다.

고대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은 주술적 의식의 대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사냥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주술적인 도구로서, 이러한 작품들은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었고 특별한 의식 행위와 함께 아우라를 발산했습니다. 이는 마법적인 도구로서의 예술과 주술적 의식이 결합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중세 성모화 또한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었으며, 특별한 종교 의식이 있을 때에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성모화는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으로서 아우라를 발산하며, 성모가 신적인 존재로서 경외받는 순간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일깨웠습니다.

그러나 벤야민은 현대에 들어와서 사진과 영상 기술의 등장으로 아우라가 축소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부터 시작된 사진 기술은 예술 작품의 아우라를 제한하고, 대중화된 예술이 아우라의 특별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작품이 가까이 있을 때에도 먼 이상적인 곳에 있는 듯한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아우라의 감소를 의미합니다.

현대의 도전은 예술이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통해 아우라를 재생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디지털 예술과 가상 현실은 새로운 창조적인 경험을 통해 아우라를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발터 벤야민의 작품은 이러한 현대적 도전 속에서 예술의 가치와 아우라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헬리오 그래픽과 시네마토그라프

예술의 아우라와 함께 예술 작품의 가치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터 벤야민은 기술적인 혁신과 예술의 대중화가 어떻게 예술의 본질을 변형시키는지에 주목합니다. 특히 헬리오 그래픽과 시네마토그라프의 등장은 예술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을 촉발하며 예술 작품의 아우라를 축소시키고 대중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헬리오 그래픽은 최초의 사진을 만들어낸 니에프스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태양광선을 이용하여 그림을 완전히 태양광선으로 그린다는 의미의 헬리오 그래픽은 최초의 사진을 가능케 했습니다. 다게르의 은도금 동판과 요오드를 활용한 은판 사진술은 이후에 필름 사진의 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은 예술 작품의 복제 가능성을 확대시켰고, 대중화를 예고했습니다.

1891년 에디슨의 키네토 그래프와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는 영상 기술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키네토 그래프는 크기와 무게로 인해 실패하였지만, 시네마토그라프는 가벼움과 이동성으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영상의 대중화가 시작되었고, 영화는 예술과 대중문화의 결합을 시사했습니다.

벤야민은 이러한 기술적 혁신이 복제 기술의 대중화를 불러왔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사진을 통한 복제는 예술 작품의 원작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모나리자의 경우, 스마트폰을 통한 선명한 고해상도의 사진이 원본과 거의 차이가 없게 되면서 예술 작품의 아우라는 축소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술의 기술적 변화는 예술의 가치와 기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짜와 가짜, 원본과 복제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예술 작품은 더 이상 고유하거나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예술은 대중과의 소통과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기술의 발전은 예술의 경험을 더욱 민주화시켰습니다.

기술적 혁신은 예술의 아우라를 축소시키고 대중화를 촉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술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미래에는 디지털 예술과 가상 현실이 예술 경험을 혁신할 것으로 보이며, 예술은 계속해서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우라의 소멸과 새로운 지각

벤야민의 시각을 통해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 어떻게 아우라의 소멸을 가져왔고, 새로운 지각을 요구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헬리오 그래픽과 시네마토그라프의 등장은 예술 작품을 복제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로써 아우라의 소멸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진과 영화는 더 이상 특별하거나 독특하지 않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이로써 예술 작품은 공허함과 쓸쓸함 속에서 새로운 형상물로 변화했습니다.

기술적 혁신은 관객에게 새로운 지각과 수용 태도를 요구했습니다. 예술 작품이 더 이상 아우라를 중시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감상될 수 있게 되면서 예술 경험이 오락화되었습니다. 벤야민은 이것을 '소외를 낯설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예술과 기술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합니다.

기술적 변화는 예술 작품을 단순한 복제물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로까지 전환시켰습니다. 예술 작품은 미술적인 용도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록물로서의 측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술의 기능과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고급 기술의 등장, 특히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은 예술의 미래를 더욱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이 어떻게 예술의 아우라와 관련된 경험을 혁신하고,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갈지에 대한 질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벤야민이 100년 전에 고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러한 고민을 통해 예술과 기술이 만날 새로운 지평을 찾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벤야민이 제기한 '예술의 정치화'와 '정치의 신미화'라는 이념은 여전히 유효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예술이 기술과 상호작용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치가 미적 경험을 통해 신미화되는 현상은 우리의 시대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으며, 예술과 기술의 상호작용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인공지능, 홀로그래피, 가상현실 등의 기술이 예술의 경계를 넓히고, 아우라의 존재 여부를 다시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대응을 통해 미래의 예술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