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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술사의 치열한 라이벌전 승자는?

by 예술 해석가 2024. 2. 25.

제욱시스 파라시오스

제욱시스 vs. 파라시오스

미술사는 예술가들 간의 경쟁과 라이벌리를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대의 라이벌전은 기원전 5세기 후반의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주인공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두 화가로 이들의 라이벌전은 미술사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제욱시스는 그림 속에 그린 포도가 실제로 새들에게 혼동을 주어 쪼으려고 할 정도로 정교하게 그렸습니다. 이에 발끈한 파라시오스는 자신보다 뛰어난 제욱시스를 이기기 위해 도전을 선언합니다. 파라시오스는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제욱시스와의 그림 대결을 요구합니다.

파라시오스는 자신의 그림이 커튼 뒤에 있다고 말하면서 제욱시스에게 증명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제욱시스는 라이벌의 덫에 빠져 커튼을 열어보라는 순간, 그림 자체가 커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라이벌의 덫에 빠진 제욱시스는 자신의 오만함을 autexousious(귀하는 자기 스스로의 적)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라이벌에게 저복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라이벌전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수많은 작품에 모티브로 사용되었습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라이벌리의 시작을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두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이야기는 예술의 경쟁과 극적인 결말을 통해 미술사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다빈치와 베로키오

다빈치와 베로키오

미술사는 자주 라이벌리와 경쟁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빈치와 베로키오의 이야기는 특히 두 탁월한 예술가 간의 라이벌리와 그에 따른 고통을 다룹니다.

다빈치는 어린 나이에 그림 솜씨를 입증하며 베로키오의 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의 예술적 기질은 빠르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베로키오는 그에게 세례의 천사 한 명을 그리게 시킵니다.

다빈치가 그린 천사는 스승 베로키오의 것과 비교하여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베로키오는 큰 충격과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동시대 역사가 아살이 이 상황을 "어린 아이의 솜씨임에도 너무 뛰어났다. 그가 그린 천사는 베로키오 자신의 것에 비해 너무나 아름다웠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충격과 라이벌리로 인해 베로키오는 더 이상 회화에 대한 열정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그림 대신 조각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베로키오는 스승으로서 제자 다빈치의 뛰어난 예술적 재능 앞에서 견디기 힘든 절망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빈치와 베로키오의 라이벌리는 예술사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도 두 예술가의 삶에는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과 라이벌리가 미술의 진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하면, 예술의 역사에 두 강력한 예술가의 라이벌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베르니니 보로미니

베르니니 vs 보로미니

17세기 로마, 불꽃 튀는 라이벌리의 장소. 베르니니와 보로미니의 서로 다른 예술적 스타일이 충돌하며 예술사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역사적인 순간.

베르니니, 존경 받는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나 조각의 천부적인 재능을 뽐내며 로마 사교계에서 주목받는 스타로 급부상. 그의 조각은 미켈란젤로마저 놀라게 만들 정도로 뛰어났다.

20대에 완성한 '다프네와 아폴로'는 그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 아폴로와 다프네의 사랑과 변모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

또한 '페르세포네의 납치'에서는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표현. 돌을 깎아내어 만든 작품들은 그의 예술적 업적을 빛나게 한다.

로마에서 건축 노동자로 일하던 출신인 보로미니, 뛰어난 미술 감각을 지닌 예술가로 성장. 그러나 협력과 사교성 부족으로 베드로 대성당 공사 현장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일찍이 떠나게 된다.

베르니니와의 라이벌리에서 밀려 패배한 보로미니, 그의 자존심은 크게 상처를 입고 자살로 이어진다. 두 예술가의 극적인 대결은 예술사에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서양미술사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남은 베르니니와 보로미니의 이야기는 예술의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두 예술가의 대결은 서로 다른 예술적 스타일과 인생의 전환점을 보여주며 미술사에 큰 영감을 주고 있다.

보로미니의 대성공과 베르니니의 역경

보로미니는 1638년에 쌍가루로 알레 꽈뜨로 수도원의 건설을 맡게 되었다. 이 수도원은 분수 사거리에 위치해 있어 "산 카를로 수도원"이라 불리기도 했다. 보로미니는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비록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은 놀라움을 주었다.

보로미니가 건축한 수도원은 일반적인 성당 건축물의 정면과는 달리 파도 모양의 리듬과 화려한 디자인으로 가득했다. 비록 저렴한 재료를 사용했지만, 그 결과물은 구조적으로 완벽하면서도 고상한 인상을 주었다. 가난한 수도원장은 보로미니의 작품에 만족하며 사람들이 몰려오는 풍경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 성공을 뒤로하고 베르니니가 착수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베르니니가 주장한 종탑의 무게로 성당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조사 결과, 베르니니의 무지와 오류가 드러났고, 새로운 교황이 즉시 베르니니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베르니니는 교황의 신임을 잃고, 그의 명성은 무너지게 되었다. 교황의 죽음과 신임 상실은 베르니니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신임을 잃은 베르니니는 새로운 교황의 적개심을 받게 되었고, 사형이나 추방형에 처할 뻔했다. 그러나 주변의 도움으로 중벌을 피하게 되었지만, 명성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반면에 보로미니는 새로운 교황에게 신임을 얻고 나보나 광장의 분수 공사를 맡게 되었다. 나보나 광장은 교황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이 프로젝트는 대규모한 공공 작업이었다. 보로미니는 성공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시 한번 기술적인 업적과 예술적인 업적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베르니니는 여전히 보로미니를 방해하고자 했다. 베르니니는 라이벌에 대한 시기와 경쟁심으로 인해 보로미니의 성공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라이벌리는 계속되었고, 이 두 예술가의 운명은 끊임없는 역경과 기회로 엮여 있었다.

보로미니의 내성적 성격과 역경

보로미니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건축가로서 건축주, 조수, 노무자와의 소통이 필수인 직업에 내성적인 성향은 적절하지 않았다. 그의 소통 불능은 교황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 교황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신임을 잃게 되었다.

베르니니는 보로미니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성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보로미니가 교황에게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서 베르니니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교황에게 다가갔다. 이를 통해 베르니니는 보로미니에게 대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베르니니의 복수와 성공

베르니니는 라이벌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보로미니에게 복수의 계획을 세웠다. 나보나 광장의 분수 모형을 통해 보로미니를 속여 교황에게 프로젝트를 빼앗았다. 이 분수는 베르니니의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복수심을 결합한 결과물로, 현재 로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베르니니는 이후에도 보로미니를 방해하고자 노력했다. 보로미니가 맡았던 나모나 광장의 아그네스 성당 건축 프로젝트를 빼앗아오고, 보로미니의 디자인을 변형시켜 성공을 차지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방해로 두 예술가의 라이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며, 보로미니의 점점 약해지는 상태를 만들었다.

보로미니의 추락과 죽음

내성적이면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이 깊었던 보로미니는 베르니니와의 라이벌리로 인해 점차 심신이 피폐해지고 사회적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정치적인 상황의 악화와 교황의 변화로 인해 보로미니는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1667년, 보로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베르니니는 보로미니를 잃은 후에도 다양한 작업을 수행했지만, 그의 작품 퀄리티는 현저하게 떨어졌다. 경쟁자를 잃고 예술적 열정이 사그라들면서 베르니니의 예술적인 동기는 약해졌다. 결국 두 예술가는 라이벌리와 비극 속에서 각자의 운명을 마주하게 되었다.

두 예술가의 라이벌리는 예술의 경쟁과 열정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불행한 결말을 초래했다. 라이벌리는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과 열정을 안겨주지만, 그 어둠의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보로미니와 베르니니는 서로에게 성취감과 비극을 안겨준, 예술사에 남을 라이벌 관계의 주인공들이었다.